저자 : 김준혁
출판사 : 더봄
저자소개
한신대학교 교수. KBS '역사스페셜‘ , JTBC ‘차이나는 클라스’를 비롯한 다양한 방송 및 저술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역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의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다. 정조正祖가 건설한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다니고, 정조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 정조대 장용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원시 학예연구사로 임용되어 화성의 복원과 문화콘텐츠 개발에 참여하는 한편 수원화성박물관 건립을 주도하였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한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회 위원과 민예총 문학위원회 위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리더라면 정조처럼』 『정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 화성』 『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 군대 장용영』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전투』 등의 저서가 있다.
목차
05 저자의 말
1부 정조, 개혁군주를 꿈꾸다
15 사도세자의 죽음, 정조시대의 서막
27 정조는 어떻게 조선의 국왕이 되었는가?
38 정조의 즉위 과정과 정국동향
46 역린逆鱗! 구선복의 역모
54 백성을 위한 군대 장용영壯勇營
64 정조의 화성 축성 계획안, 『어제성화주략』
73 개혁군주 정조正祖의 꿈
82 정조시대의 문화적 다양성
90 정조의 좌우명과 대동사회의 실천
95 다산이 바라본 정조의 죽음
2부 다산 정약용, 화성을 설계하다
107 다산 가문의 위상과 학맥
114 다산의 성장과 공부
120 정조와 다산의 운명적 만남
128 정조가 내려준 다산의 관직
138 성호 이익과 다산의 만남
145 다산 형제들의 스승 녹암 권철신
152 형이자 스승인 정약전
158 이가환, 다산과 함께 정조의 정치적 동반자
165 중국의 문화를 알려준 박제가
171 이승훈, 다산의 매형으로 신학문을 열다
177 토목학자 다산, 배다리를 축조하다
184 다산 실학의 결정판, 화성을 설계하다
195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203 다산의 인생과 ‘18’이라는 숫자
3부 화성, 정조와 다산의 풍운지회風雲之會
209 정조, 수원으로 생부 사도세자의 묘소를 옮기다
222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체모를 유지하라!
230 채제공의 화성 축성 방안과 지휘
239 농업과 상업 모두를 중시한 실학자 채제공蔡濟恭
249 화성 축성의 실질적 책임자 조심태
256 양반과 평민이 어우러진 화성의 새로운 상업개혁
266 실학정신과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만들어진 화성
272 정조의 비밀 어찰과 화성華城
282 백성들에게 행복을 주는 정조 능행陵幸의 의의
288 1795년 윤2월 화성행차는 어떤 길로 갔는가?
295 혜경궁 홍씨 회갑 진찬연의 비밀
304 조선 최대의 행궁, 화성행궁
313 화성, 불취무귀不醉無歸의 산실
4부 화성만의 독특한 건축물과 시대정신
321 화성의 신神을 받들어 모신 성신사城神祠
327 우아한 철옹성 공심돈空心墩
334 아름다움의 극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345 일곱 빛깔 무지개 화홍문華虹門
351 조선에 단 하나밖에 없는 봉돈烽墩
357 위엄과 사랑을 보여주는 동장대東將臺
363 화성유수부의 의원, 조선 의료 개혁의 시작
371 백성이 주인인 세상을 만든 터전 만석거萬石渠
376 화성에 국영농장인 대유둔을 건설한 정조
384 정조, 화성행궁에서 신무기를 실험하다
392 상하동락上下同樂의 잔치 화성 낙성연落成宴
398 8일 간의 화성 행차와 화성 축성을 기록한 『의궤』儀軌
407 에필로그
부록
411 정조대왕 연보年譜
416 다산 정약용 연보年譜
421 화성 축성 연표年表
내용요약
화성(華城)은 1997년 12월 6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17년은 세계문화유산 지정 20주년이 되는 해로, 수원시와 경기도는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했었다. 이 책은 화성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가 세계문화유산 지정 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출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화성(華城)은 어떤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일까?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고 조사한 국제기념물유적협회는 “화성은 18세기 군사 건축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럽과 동아시아의 성곽 축조 기술의 특징을 통합했다는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하였다. 당시 유네스코 심사위원으로 화성을 방문한 스리랑카의 실바 교수는 “화성의 역사는 불과 200년밖에 안 됐으나 성곽의 건축물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라고 하였다. 현재 국제기념물유적협회 한국위원회 위원장이자 유네스코 위원인 동국대학교 이혜은 교수도 2010년 11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열린 ‘유네스코포럼’에서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화성이 아름답고 독창적일 뿐 아니라 화성 축성 과정에서 보여준 정조대왕의 위민정신과 과학 정신을 담은 창조성 때문”이라고 하였다.
화성(華城)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게 된 배경에는 또 다른 중요한 사연이 있다.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6개월 전인 1997년 6월, 프랑스 파리의 이사회와 카페의 작은 모임으로 돌아가 보자. 그 모임의 참석자들은 유네스코 이사회 집행위원들이었으며, 당시 그들은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한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기는 하나, 6.25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것을 현대에 와서 복원하였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 때문에 그들은 화성의 세계유산 등재에는 부정적이었다. 외무부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당시 수원시장이었던 故 심재덕 시장은 다음 날 아침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유네스코 이사회에 공식 요청하여 유네스코 이사회 컨벤션센터 옆의 작은 카페에서 집행위원들과 만났다. 다음날 유네스코 이사회는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통과시켰다.
부정적이었던 그들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때문이었다. 당시 심재덕 수원시장은 영인본 『화성성역의궤』를 들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세계 문화유산위원회 집행위원들에게 우리 민족의 자랑인 ‘화성’의 모든 기록을 담고 있는 『화성성역의궤』를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화성이 축성 당시의 기록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복원된 것임을 강조하였다. 집행위원들은 『화성성역의궤』라는 기록물을 보고 그 기록의 철저함과 세밀함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6년 6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BNF)에서 왕실 도화서 화원들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채색으로 화성 시설물을 그린 ‘정리의궤 성역도(城役圖) 제39권’이 발견된 것이다. 정조는 화성이 완공된 후 축성의 전반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를 간행하였다. 화성성역의궤 수권(首卷)에는 훈련도감 소속의 화원이 그린 ‘화성전도’가 실려져 있는데, 화성성역의궤 수권에 그려진 ‘화성전도’는 채색본이 아닌 목판본으로 제작된 것이다.
화성 축성을 기록한 책으로는 『정리의궤』도 있다. 이는 1797년~1800년 사이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옮긴 과정을 담은 『현륭원 원소도감 의궤』, 『화성성역의궤』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한글로 기록한 것으로, 어머니를 위하여 언해본으로 편찬한 것이다.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한글의궤’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재 프랑스 파리 동양어 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887년 한국의 첫 프랑스 외교관으로 부임했던 빅또르 꼴렝 드 플랑시(1853년~1922년)가 프랑스로 가져갔다. 그는 귀국 후 『정리의궤』 12책은 파리 동양어 학교에 기증하고, 채색 그림들이 있는 제39권인 성역도는 경매 처분하였다.
'채색본 성역도'를 찾아낸 주인공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김준혁 교수이다. 김준혁 교수는 2016년 6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인 안민석 의원 등과 함께 파리로 가서 경매 당시 구매자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한 이 책의 존재를 확인하고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채색본 정리의궤’의 발견은 정조대왕의 개혁 정신과 민본주의의 뜻이 살아있는 화성의 완벽한 복원과 정비를 위한 소중한 자료이기에 당시 방송과 신문 등이 다투어 보도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무엇보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성곽, 그리고 백성을 위한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성의 의의는 그뿐만이 아니다. 화성에는 정조의 인본주의와 조선의 개혁을 추진하고자 한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 화성을 설계한 이가 다산 정약용이다. 일찍이 정인보는 그 점에 주목하여 “정조는 다산이 있었기에 정조일 수 있었고, 다산은 정조가 있었기에 다산일 수 있었다”고 했다.
김준혁 교수는 이 점을 주목했다. 화성 축성을 통해 정조와 다산, 두 사람은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화성은 두 사람이 꿈꾼 개혁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었을까? 김준혁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정조와 다산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인간 존중의 정신이 어떻게 화성에서 구현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화성과 정조에 관한 전문가로 일가를 이룬 김준혁 교수는 슬기로운 임금 정조와 어진 신하 다산이 꿈꾼 백성을 위한 ‘대동(大同)의 도시 화성’을 주제로 삼았다.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이상적인 나라는 평화롭고 평등하고 외세에 침탈당하지 않는 자주적인 나라였다. 그가 봉건시대의 군주라는 점에서 반론도 있을 것이다. 또한, 다산이 그런 세상을 꿈꾸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역시 봉건시대 군주 정조를 위해 헌신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봉건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그들의 꿈마저 깎아내릴 수는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두 사람은 그들의 이상을 언어로, 몸으로,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정책과 대안을 마련했던 정조와 다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그 어떤 국왕보다도 어려운 정국을 딛고 국왕이 된 정조는 백성들이 누구나 부유해지고(戶戶富實), 화목하고 즐겁기를(人人和樂)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는 바로 ‘낙국낙토’(樂國樂土)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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