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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적

송시열 과 그들의 나라 : 한 인간을 둘러싼 300년 신화의 가면 벗기기

by 책먹는아재 202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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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덕일

출판사 : 김영사

 

저자소개

  숭실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를 창립한 이래 우리 사회 양대 사대주의 역사관인 조선 후기 노론 사관과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해체하는 한 길을 걸어왔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등의 저서를 통해 남한 강단 사학의 노론 사관을 비판했고,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우리 안의 식민사관등을 통해 남한 강단사학의 정설인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비판했다. 현재 조선왕조실록 1~5(10권까지 근간)을 집필 중에 있고,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해역), 신주사기등 수많은 저서가 있다. 황국사관을 추종하는 역사학자들은 임나를 가야로 보고, 그 임나를 야마토왜가 지배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 임나일본부는 일본열도에 있었다는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에 없었고 일본열도에 있었음을 밝혀내어 황국사관의 논리적 모순을 조목조목 밝혀 해체한 책이다.

 

목차

개정판 서문

책머리에

들어가는 글

1부 흔들리는 주자학의 나라에서

어찌 감히 농민들이 사대부를 넘보랴

2부 인조반정, 그 비극의 뿌리

서인들의 쿠데타, 인조반정이 낳은 비극들

소현세자, 그 진보성과 개방성의 좌절

3부 북벌의 시대, 대동법의 시대

북벌, 말인가 실천인가?

농민을 잃을지언정 사대부를 잃을 수는 없다

숭무주의자 효종과 숭문주의자 송시열

스러진 북벌의 꿈

4부 왕위에 올랐다고 가통까지 이은 것은 아니다 - 예송논쟁

임금이라도 차자가 아닌가?

적자라는 호칭은 임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종통과 적통이 어찌 다르랴

어찌 감히 주자와 달리 해석하랴

온양 행궁에서 벌어진 싸움

15년 전과 다르단 말인가

5부 국익(國益)보다는 당익(當益)이 앞선다

스승만 알고 임금은 알지 못하는구나

아버지가 중한가 스승이 중한가

정권을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남인들의 원한을 어찌 풀겠는가?

남인 소생 왕자가 어찌 임금이

숙종의 분노

나가는 글

이 책을 쓰는 데 직접 도움을 받은 자료와 책

 

내용요약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란의 대상, 조선왕조실록3천 번 이상 언급된 조선 최대의 당쟁가 송시열. 그는 조선과 한국사에 비극을 잉태했다. 300년 넘게 유지되어 온 송시열 신화의 비밀, 성인과 악마라는 극단적 찬사와 저주 사이에 놓인 그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서인들의 쿠데타, 인조반정은 그 비극의 뿌리였다. 소현세자의 좌절과 북벌왕 효종의 급서, 이를 둘러싼 예송논쟁, 그리고 현종의 의문의 죽음. 송시열이 살았던 시대는 가장 치열한 당쟁의 와중이었으며, 사회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였다.

  송시열은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죽는 사사(賜死) 으로 생을 마감한다. 숙종 때를 제외하고는 역모가 아닌 경우 대신을 사형시킨 예가 없고 국문도 하지 않을 만큼 대신을 우대한 조선에서 그는 죄인들의 수괴라는 애매한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이후, 노론의 재집권과 함께 유학자로서의 최대 영광인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배향되고, 공자, 맹자, 주자처럼 송자로 불리는 영광을 누리는 등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많은 신화가 과장되었거나 상당 부분 조작되었듯이 송시열도 그러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접근조차 금지되어 있던 송시열 300년 신화의 가면을 벗겨냈다. 지금까지 나왔던 송시열에 대한 글들처럼 그를 성인으로 만들어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글이 아니다. 그를 인간의 자리,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파탄에 대한 부채를 지녀야 하는 한 정치가의 자리로 끌어내려 객관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아 그 비극적 실체를 추적한 역사서다. 사대부와 당의 이익을 대변한 송시열과 이에 맞선 정적 윤휴, 허목, 윤선도, 이경석, 김육 등의 주장은 무엇이며, 당시 조선의 역사는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처음 이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 저자를 말렸다고 한다. 다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우암 송시열이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숙종 15(1689)에서 300년도 더 지난 시점이었다. 17세기 말에 세상을 떠난 인물의 이야기가 21세기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문명국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현실이었고, 아직도 현실이다. 이는 17세기의 사회 구조가 우리 사회 일각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저자의 지인들이 우려했던 여러 일들이 벌어졌는데, 화형식까지 치러졌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편향된 역사적 인식이 여전히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유학이 유교로 변질하여 여러 비극이 발생했는데, 송시열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도 사실 여기에 있고, 저자가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문제 때문이었다. 유학이 유교로 변질한 것이 우리 역사와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불우하게 세상을 떠난 공자의 학문이 교리, 즉 도그마로 변질하면서 공자로서는 꿈도 꾸지 못했을 숱한 사건이 발생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자의 사상이 도그마가 된 것이 아니라 공자의 사상을 중세 중국인의 관점에서 해석한 주희(朱熹 : 1130~1200, 주자)의 사상, 즉 주자학이 도그마가 된 것이다. 주희 역시 생전에 뜻을 펼치지 못했던 학자이자 정치가였지만 조선에서 송시열을 필두로 한 주자학자들에 의해 신격화되었다. 송시열이 주희를 신격화시키면서 그 자신도 제자들에 의해 비슷한 존재로 격상된다. 주자학 유일사상 체제는 조선 후기 사회를 시대에 동떨어진 신정(神政) 국가로 만들었다.

  이 책의 목적은 송시열과 그가 이끌었던 한 시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것이며 송시열에 대한 비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송시열은 과연 극단적 찬사의 자리에 합당한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극단적 저주의 자리에 합당한 인물이었을까? 그가 이끌었던 한 시대는 뒤의 세대에게 존경받을 만한 시대였을까, 아니면 부정되어 마땅한 시대였을 뿐일까? 아니면 찬사와 저주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시대였을까?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었던 당시 조선의 모습과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통해 지역감정이나 비이성적인 논쟁과 다툼을 반복하고 있는 현재를 비춰볼 거울로 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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