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테가트 머피
출판사 : 글항아리
저자소개
쓰쿠바대학 도쿄캠퍼스에서 국제 비즈니스 MBA 프로그램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임했고, 퇴직 후에는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대 일본에 관해 저술한 책들로 여러 상을 받았고 『뉴리퍼블릭』 『내셔널인터레스트』 『뉴레프트리뷰』 등에 기고하고 있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투자 은행가, 브루킹스 연구소 객원 연구원이었던 경력이 있고, 『아시아태평양 저널: 일본 포커스』의 코디네이터이기도 하다.
목차
추천 서문
들어가는 말
서문
1부 굴레의 기원
1장 에도 시대 이전의 일본
천황 제도 | 후지와라 가문과 헤이안쿄의 설립 | 헤이안 시대의 유산 | 여성에 의해 쓰인 문학 |『 마쿠라노소시』와『 겐지 이야기』| 헤이안 질서의 붕괴와 봉건주의의 등장 | 쇼군 | 몽골의 침략, 가마쿠라의 멸망, 아시카가 막부 | 일본의 ‘봉건주의’ | 봉건시대의 문화와 종교 | 유럽인의 도래 | 일본의 재통일
2장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도쿠가와 시대의 쇄국 | 질서와 안정에 대한 도쿠가와 막부의 집착 | 경제와 사회의 변화 | 대중문화 | 47명의 로닌 이야기 | 페리 제독의 ‘흑선’과 도쿠가와 막부의 몰락 | 1868년의 ‘혁명’? | 막부의 종말
3장 메이지 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이와사키 야타로와 근대 일본 산업 조직의 탄생 | 자본의 축적과 입헌 정부라는 겉모습 | 1895년의 청일전쟁 | 1904~1905년의 러일전쟁 | 메이지 시절에 뿌리내린 근대 일본의 비극 |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메이지의 유산 |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정치적 통제를 뛰어넘은 관료주의 | 전쟁의 재앙 | 루거우차오 사건과 노몬한 전투 | 진주만, 항복, 전쟁의 유산
4장 경제 기적
전후 10년간의 이례적인 상황 | 고도성장의 정치적·문화적 기반
5장 고도성장의 제도적 기틀
일본의 기업들 | 산업협회들과 경쟁의 통제 | 고용 관행 | 교육 제도 | 금융 시스템 | 관료 제도 | ‘현실의 관리’
6장 성장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성장의 대가 | 야구와 샐러리맨 문화의 등장 | 고도성장기 일본의 여성 | 마쓰다 세이코 | 고도성장의 제도와 글로벌 경제 프레임워크
2부 오늘의 일본을 구속하고 있는 어제의 굴레
7장 경제와 금융
대차대조표 불황 | 일본의 차이 | 공황의 회피: 일본 금융기관의 구제 | 잘못된 전제, 그리고 활짝 열린 재정 적자의 문 | 아시아 금융 위기의 단초 | 일본 정부의 재정 지출
8장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 | 바뀌어가는 고용 관행 | 세계화의 어려움 | 글로벌 브랜드와 해외 직접 투자 | 매몰 비용의 포기 | 한국으로부터의 도전 | 일본 비즈니스의 미래와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
9장 사회문화적 변화
세계로 뻗어나간 일본 문화 | 갸루 | 오바타리안, 소다이고미, 황혼 이혼 | 초식남 | 일본의 남성성 | 변화하는 일본 남성 집단 | 계급의 부활 | 일본 지도층의 쇠퇴
10장 정치
1955년 체제 | 다나카 가쿠에이 | ‘닉슨 쇼크’와 다나카의 총리 시절 | 록히드 스캔들 | 야미쇼군 다나카 | 측근들: 다케시타 노보루와 가네마루 신 | 오자와 이치로 | 정치 질서의 수호자들 | 1994년의 선거제도 개혁 | 고이즈미 준이치로 | 야스쿠니 신사와 고이즈미 정권의 외교관계 | 고이즈미 이후의 자민당
11장 일본과 세계
‘신일본통’ | 오키나와와 후텐마 해병 기지 | 하토야마 정권의 붕괴 | ‘영향력의 대리인’ | 3·11과 간 나오토 정권의 운명 | 노다 정권의 자멸 | 센카쿠열도와 일본의 영토 분쟁 | 아베 신조의 귀환 | 경제 회복? | TPP, 특정비밀보호법, 아베 정권의 우선순위 | 중국과의 관계 정립 | 지속 가능할 수 없는 미일 ‘동맹’ | 다시 아시아의 일원으로 | 아베의 과욕과 미래
부록 1: 메이지의 지도자들
부록 2: 전후 일본의 유력한 정치가·관료
더 읽을거리
한국어판 저자 후기
옮긴이의 말
내용요약
작금의 세계 금융시장의 틀을 형성하는 데 일본의 여신(與信) 창조가 맡았던 중심적인 역할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이슈들을 하나하나 떼어놓고서는 일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일본 경험의 총합을 다루지 않고서는 일본 현실의 그 어느 측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일본 은행의 통화 정책, 일본 기업의 인사 관행, 도쿄의 기묘한 스트리트 패션, 일본 정치의 끊임없는 의자 뺏기 놀이, 수 세기에 걸친 일본의 쇄국, 이런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내가 열다섯 살 때 낡고 북적이는 하네다 공항에 내려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회색의 약동하는 도시의 풍경을 봤을 때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주제들을 정리하고, 내 평생의 사유에 질서를 부여할 기회를 줄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라고 밝힌다.
『일본의 굴레』는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를 모두 다루고 있다. 책 서문에서 말하듯이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역사 및 문화에 관한 주장과 융합시킨 것이다. 외부자로서의 시각과 내부자로서의 이해를 겸비한 저자가 제공하는 다면적인 일본 사회 분석은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통찰을 제공한다.
일본인 대부분은 본인들의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서양에서는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잘 해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일본에서는 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도(그리고 모두 그렇다는 사실을 안다) 잘 해내야 한다. 일본에서 마주치는 예의 바름과 서비스의 수준은 아주 하찮거나 사실은 지저분한 일에서조차 다른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높아서, 가끔 이 세상이 나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환상에 빠져들게 할 정도다. 조금만 무언가를 하면 ‘오쓰카레사마데시타!(お疲れ樣でした!)(과장된 감사의 톤으로 당신의 커다란 희생에 대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라는 외침이 되돌아온다.
누군가에게 차 한 잔과 디저트를 대접하면 진수성찬을 대접했다는 감사를 받는다(고치소사마데시타, 御馳走さまでした). 반대로, 성대한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갔는데 너무 차린 게 없어서 부끄럽다는 인사를 받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형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형식이고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형식에 자발적인 감정이 가득한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모두가 그런 기대에 부응해 행동하고 있고 그게 또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가장 공허하고 형식적인 행위들이 오히려 의미를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런 '형식주의'는 대인관계에도 적용된다. 상대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당신의 노력에 걸맞은 금전적인 보상을 할 의사가 눈곱만큼도 없는 까다롭고 형편없는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지루한 일을 하고 있더라도, 절친한 벗이나 열정적인 동료를 대하듯 한다. 하지만 타인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최고의 동료를 가진 것처럼, 누가 됐든 지금 상대하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양 행동하다 보면, 애정이나 존경 그리고 주어진 일을 최대한으로 잘 해내려는 의지 같은 감정을 실제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주변은 내가 깊이 아끼는 사람들로 둘러싸이고, 또 그들이 나를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적 느낌‘을 갖게 된다.
모든 사람이 한번 약속한 일은 꼭 할 것이라고, 그것도 잘 해낼 것이라고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사회에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모순을 애써 부정하려는 이러한 태도에는 치명적인 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점은 흔히 간과된다. 그런 태도가 일본을 매력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드는 원천일수도 있겠으나, 대중을 착취하기 좋은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일본 근대사의 비극을 설명해 주는 열쇠이기도하다.
일본 사회에 깊이 각인된 이런 가치관은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성숙함'이라 여기게 만든다. 가치 없는 목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마음가짐을 내면화한 일본의 집단무의식은 사회 지도층인 권력자들의 부조리를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이중적 사고‘를 가능케 한다.
일본은 더 이상 자국과 이웃 나라들을 불바다로 만들 만큼 위협이 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딱히 원인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이유로 이런저런 일이 발생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의식, 그 안에서 개인은 자기 본분을 다하며 최선을 다해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식은 여전히 만연해 있다. 일본인들이 이런 의식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피해자 의식(히가이샤 이시키, 被害者意識)'이다.
'피해자 의식'이 현실 세계에서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일본은 무시무시한 재정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한때 전 국민의 경제적 안정을 거의 달성토록 했던 사회적 규약을 폐기했다. 또한, 세금과 물가를 올려서 가계의 구매력을 망가뜨리고, 국민연금이 지켜야 할 약속을 파기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직원들 삶의 질을 보장하던 임금체계는 안정과 미래라고는 없는 저소득 계약직으로 대체되었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자산을 망가뜨리고 직원들을 해고하는 월가의 은행가들처럼 자신들이 한 일을 생각하며 기분 좋아 낄낄거리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들도 선택의 여지 없이 희생의 대열에 참여한다고 생각한다. 그 희생을 통해 본인들이 개인적인 이득을 챙긴다 해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백만의 일본 국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쉬면서 “시카타가 나이, 仕方がない(할 수 없군)”라고 말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이 있다는 사실(강한 노조, 노동자를 대변하는 건강한 정당, 확실한 사회안전망, 일본 산업의 부활을 위해 가계의 실질소득을 늘려서 내수를 진작시키는 각종 정책)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고려한다고 해도 성숙하지 못한 포퓰리즘으로 비난받는다. 개혁을 위한 대안적 입법시도가 있다해도 ‘일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격하면서 기득권 세력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침묵하도록 강요한다. 저자는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를 거쳐 근현대로 올라오며 이런 시스템의 일부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마지막 두 장은 최근 수십 년간 일본을 딜레마로부터 구해낼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세력이, 미국의 직접적인 공모와 개입으로 인해 붕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국민에게 사람답고 안전한 삶을 제공하는 데 존재 목적이 있는 기업, 은행, 정부, 군대, 경찰과 같은 조직이, 그 조직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사람들, 가상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전 국민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시도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오염되고 장악되어왔는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직을 운영할 때 필요한 일을 하면서도 실제의 동기는 스스로 감추는 묘한 심리 상태가 필요한데, 조지 오웰은 이런 관념적 곡예에 ‘이중사고(doublethink)’라는 유명한 이름을 붙였다. 일본의 권력자에게는 모순에 대한 관용이 허락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필수적이었던 정치적·문화적 전통이 익숙하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에도 시대에 막 부의 강력한 권위를 기반으로 수백 년간 평화를 유지해서 상상 이상의 눈부신 사회적·경제적 발전을 이뤄냈다는 주장은 되새겨볼 만하다. 부의 축적은 맨 아래 계층인 상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신분제도가 철저하게 유지되면서 생겨난 거대한 모순의 에너지는 오늘날까지도 일본 사회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려던 불과 한 세대의 압축적인 노력이 어떻게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바꿔놓았고 어떻게 여전히 일본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굴레’로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메이지 유신이 천황제도와 의회제도라는 두 가지 ‘허구’를 앞에 내세웠으나 그 뒤에서는 유신의 주역들이 과두정치를 펼쳤다는 지적, 그들의 사후에 남긴 커다란 권력의 공백으로 인해 최종 책임이 없는 관료에게 휘둘리는 현재 일본 정치의 구조가 탄생했으며, 일본의 조직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최종 책임의 소재가 없는 문화’ 때문이라는 분석도 와 닿는다.
저자는 국제정치경제학 연구자답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와 경제 관련 서술에도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느데 미일 관계의 수호를 위해 행동하는 미국의 ‘신 일본통’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일본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함과 동시에 현재 일본의 문제들에 원죄가 있는 미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한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그토록 어려운 까닭은 태평양전쟁 처리 과정에서 일본인들 스스로 전범국가로서 역사적 책임을 반성할 기회를 미군정이 원천 봉쇄해버린 것 때문이라고 역설하는데, 미국인으로선 뼈아프게 경청할 부분이다. 1990년대부터 미·일 관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오키나와의 후텐마 해군 기지 문제해결도 미국 내 관료 조직 간의 경쟁과 이기주의로 인해 불필요하게 장기화하면서 복잡해졌다는 지적 역시 그러하다.
환율 정책이나 ‘거품경제’에 관한 서술은 깊이 다루고 있어 일본 경제가 그려온 극적인 궤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일본이 패전 이후 미국에 국방과 외교를 맡긴 대신 미국을 지렛대 삼아 경제를 일으키고, 나중에는 거꾸로 미국이 일본의 경제력에 의존하여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를 유지한다는 서술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국 사회의 수많은 면모가 전후 일본의 모습과 닮았음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모델이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니 비슷할 수밖에 없다지만, 주어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문장이 가득하다. 그렇게 일본을 따라가던 한국은 20세기 말을 분기점으로 서서히 궤적을 달리하고 있으나, 일본이 고민하는 만성적 저성장이나 언론의 독립성, 사법 개혁, 저출산 고령화 사회 등이 우리에게도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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