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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적

디엔비엔푸 : 베트남 독립전쟁 회고록

by 책먹는아재 2023.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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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보응웬지압(1911~2013) 

출판사 : 길찾기

보응웬지압

 

저자소개

  서구 강대국을 상대로 두 차례 국운을 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트남 근대 최고의 명장. 베트남 중부의 꽝빙성 안싸 마을에서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반대하는 반식민주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1926년부터 학생의 신분으로 베트남 청년혁명당에 가입했다. 이후 민족지도자 호치민을 수행하며 프랑스와 일본을 상대로 무장 독립투쟁을 계속했으며. 1946121차 인도차이나 전쟁(대불항전)이 시작되자 베트남 인민군 총사령관이자 총군사위원회 비서로 군을 지휘했고, 9년에 걸쳐 베트남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2차 인도차이나 전쟁(대미항전)에서도 군을 지휘하여 1975년 남북 베트남 통일에 큰 공을 세운다.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베트남군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하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목차

디엔비엔푸로 가는 길

1. 다가온 기회

2. 주타격지점

3. 국경지방 해방

4. 베트남 노동당

5. 내륙지방으로

6. 평원지대를 향해

7. 1951년 여름

8. 커다란 의문

9. 화빙 전역

10. 두 개의 전선

11. 떠이박을 향한 새로운 여정

12. 삼네우아의 봄

디엔비엔푸

13. 고뇌에 찬 결단

14. 디엔비엔푸

15. 역사적인 디엔비엔푸 전역

16. 디엔비엔푸 대첩과 동춘 승리의 궁극적 의의

17. 디엔비엔푸, 40년 후의 회상

18. 디엔비엔푸 전역의 교훈

 

책 속으로

  "나는 작전을 개시하는 최선의 방법은 텃케, 까오방과 연결되는 도로상의 전술기지인 동케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결심했다. 동케가 요새화되어 있다 해도 우리는 이 중요한 기지를 파괴할 능력이 있었다. 일단 적이 동케를 상실하면 적은 동케를 탈환하거나 까오방으로 철수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적을 성채 밖에서 격멸시킬 기회를 얻게 된다. 만일 적이 동케를 탈환하지 않으면 우리는 텃케를 공격할 것이다. 일단 적이 동케와 텃케를 모두 잃으면 적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여건은 우리에게 보다 유리하게 변할 것이다. 상황을 분석해본 결과, 우리는 진지전을 치르면서 까오방을 해방시키는 대신, 적을 포위해 항복을 강요하는 편이 낫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 p.38

 

전시근로자가 전투원을 만나면 그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고향을 물어보고,

만일 군이나 현 혹은 촌락(村落)이 같으면 기쁨에 넘쳐 온몸을 떨었다.

즐거운 노랫가락이 비, 추위 그리고 안개 속에서도 울려 퍼졌다.

고개가 높으면 얼마나 높을까?

우리가 올라가면 고개보다 높지.

 

  누가 이 노래를 작곡/작사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퉁(Thung) 고갯길에서 한 번 불렸던 것인데 나중에 우리 국가문화 유산이 되었다.         --- p.159p

 

  남베트남에게, 1951년은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다. 우리 군사기지는 빈번히 포위되었고, 고립된 상태에서 끊임없이 적의 평정작전에 대응해야 했다. 프랑스는 평정작전을 위해 군종 장사병을 괴뢰 참모에게 인계했다. 프랑스는 특히 젊은이들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입대시켜서 남베트남 전역에 걸쳐 다양한 병종의 68개 대대를 창설했다. 고맙게도 그들은 7개 정규대대와 2개 포대를 올해 초에 북쪽으로 전환 배치하여 발생한 결원을 보충했다. 우리는 전선과 군의 재편성을 통해 남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하고, 인도차이나 전장에서 적군의 20%를 묶어놓아 남부를 지원했다.            --- p.211

  이 작전에 대해 글을 쓸 때면, 아군 병사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취사병의 발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야전 취사 중에 불이나 연기가 피어오르면 아군의 위치가 발각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했으므로, 아군 병사들은 적 정찰기를 피해 야간에 밥을 지어야 했다. 308여단 의무대 취사병인 황껌은 연기를 빨아내기 위해서 산 중턱에 있는 아궁이까지 연결된 여러 개의 굴을 파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각 땅굴의 입구는 나뭇잎으로 덮고 다시 흙을 얇게 덮어서 습도를 유지했다. 아궁이에서 올라온 연기는 땅굴을 타고 올라와서 엷은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이 방식이 고안된 후, 취사병들은 적 정찰기가 선회하는 동안에도 취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황껌취사 아궁이는 이후의 모든 작전에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대미항쟁 기간 중 우리 병사들이 쯔엉썬 지역에 있을 때도 사용되었다. ‘황껌은 제308여단 병사의 모범이 되었다.

--- p.277

전역사령부는 일련의 상황 판단에 기초하여, 계획대로 3단계로 진입할 것을 결정했다. 이번 단계의 목표는 전역 승리를 위해서 모든 병력을 집중해 나싼에 있는 적을 공격,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전투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약점을 먼저, 강점은 나중에 공격한다.

결정적인 지점에 대한 공세를 목적으로 전 지역을 포위한다.

외곽을 먼저 쳐서 전선을 열도록 노력하고 중앙으로 깊숙이 공격한다.”

--- p.334

 

내가 말했다.

이 전투에서 우리 모두가 100% 승리를 확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말이 없던 총참모장이 말했다.

“100%를 확신해야 한다면, 우리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잠시 후, 당 위원회는 작전 수행에 있어서 확고한 극복 방안이 없는 수많은 난제에 봉착할 수 있음을

만장일치로 선언했다.

내가 결론을 지어 말했다.

  “ ‘승리가 확실한 경우에만 공격을 개시한다라는 근본적인 원칙을 고려하여 우리가 적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지도 철학을 속공속승연공연진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공격을 연기할 것을 결정합니다. 전 전선에 있는 우리 군은 재집결지로 후퇴하고 대포 또한 끌고 갈 것을 명령합니다. 정치 사업에서는 철수 명령의 이행을 공격 명령의 이행과 동일하게 실시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군수지원 사업은 새로운 지침에 기초하여 준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합니다.”      --- p.397

 

  17:30, 우리는 지휘소를 탈취했다. 드 까스트리와 참모들은 모두 생포되었다. 계곡에 있던 적들이 나와서 전원 항복했다. 그들은 포로로서 잘 취급되었다. ‘결전(決戰) 필승(必勝)!’이라는 구호가 적힌 깃발들이 디엔비엔푸 상공에 휘날렸다우리는 바로 그날 야간에 남부 구역을 공격했다. 그곳에 있던 2,000여 명의 강력한 적들은 북부 라오스로 철수를 시도하고 있었다. 아군은 추격을 단행해 20:00 시쯤 따라잡았다. 우리는 자정까지 그들 모두를 생포했다.

55일간 지속된 전투 끝에,

디엔비엔푸에 있던 적 집단전술기지는

완전히 궤멸하였다.

우리의 역사적인 디엔비엔푸 작전은 완전한 승리였다.

1953~1954 동춘 기간의 전략적 공세가 위대한 승리로 끝을 맺은 것이다.

--- pp.492-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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